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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여행

[서울] 서울에서 볼만한 곳 북한산 백운대

by 행복사냥이 2018. 10. 12.

나를 위한 힐링여행, 서울을 한 눈에 담다.

북한산 백운대

 

 

 

 

사를 품은 산 북한산

가끔 멀리서 보이는 산이 북한산인지 도봉산인지 잘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직접 확인하기 위해 마음 먹고 북한산 백운대을 탐방해 보기로 했습니다.

북한산을 무시했다기 보다 멀리서 자주 보는 산이라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역시 산은 "산"입니다. 북한산 탐방 후 몇 일을 근육통으로 고생 했습니다. ㅠ)

탐방을 하면서 느낀 것은 탐방로 상에 많은 문화유산이 있다는 것입니다.(지금까지 3번 정도 탐방을 했는데, 그동안 몰랐던 것이 아쉬웠어요.) 

오늘은 북한산 탐방로와 평소에 몰랐던 문화유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산에서 바라본 일산방향                       아직 백운대는 아닙니다.^^

한산

북한산(北漢山)은 서울시 강북구, 도봉구, 은평구, 성북구, 종로구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양주시, 의정부시의 경계에 있는 높이 835.6m(2013년 6월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산으로, 이름은 조선 후기시대때 한성의 북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북한산은 1억 7천만년전에 형성되었으며, 이곳은 최초 백제땅으로 지역명으로 한산, 산의 명칭으로 31년 이후 횡악(橫嶽)이라고 하였다. 고구려가 475년 백제로 부터 이곳을 정벌하여 지역명으로 '북한산주'라 칭하고 산명은 그대로 횡악으로 불렀다.

신라가 이곳을 정벌하고(553년)난 후 557년에 북한산주(北漢山州)라 칭하였다. 신라는 횡악을 부아악으로 고쳐부르고, 이곳 북한산주 부아악에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졌다. 백제 초기에는 횡악(橫嶽), 신라때는 신라 진흥황 순수비가 세워진 이후 부아악(負兒岳)이라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초기에는 부아산이라 불렀고, 고려 시대에는 993년 이후 때 부아봉(현 인수봉 810.5m), 중봉(현 백운대 835.6m), 국망봉(현 만경대 800.6m, 국토지리정보원) 세 봉우리가 모여 있어 삼각(三角)처럼 보여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려왔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고려시대에 측성한 중흥산성을 보수축하여 북한산성을 축성(1711년)한 이후 한성의 북쪽이라는 의미에서 북한산(北漢山)이란 산명을 별칭으로 사용해 오다가, 일제 강점기 이후로 점차 북한산(北漢山)이란 산명을 정식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983년에 대한민국의 국립공원 북한산으로 지정 되었고, 2010년에는 북한산 둘레길 코스가 개방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을에 좋은 북한산 탐방

북한산 탐방 코스는 13개가 있는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있는 첫 번째 탐방로이며 대표인 북한산성코스를 조금 응용해서(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 북한산대피소 ~ 용암문 ~ 백운대) 10시간 정도 탐방 코스로선택했습니다.

이 번 탐방은 안전한 탐방과 나중에 여러분들이 직접 눈으로 경치와 문화유산을 보시도록 많은 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점,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주차장 정보

① 3 ~ 10월(입차 시 ~ 평일 20:00 / 휴일 21:00), 11 ~ 2월(입차 시 ~ 평일 19:00 / 휴일 20:00)

② 최초 1시간 1,100원, 이후 1시간 300원, 9시간 이상 13,000원(저는 15,000원을 지불했습니다.)

 

탐방로 선택               올라가는 길은 대략 6km정도, 내려오는 길은 8km정도(10시간) 계획을 했습니다. 제가 탐방로를 선택한 기준은 "최대한 경사지는 생략을 하자!" 였습니다.^^

 

등산하기 전 스트레칭은 필수 입니다. 간단하게 주차장에서 몸을 풀고 탐방로 입구까지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평상시 속도보다 처음 20분은 1/2의 속도로 걷는 것이 좋습니다.)

멀리서 보이는 원효봉                     해발 505m로 행정구역상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속하며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수도했던 원효암이 유명합니다.

탐방로에 설치된 고무바닥               기분 탓 일까요? 앞으로 험난한 탐방로가 예상됩니다. 

중성문 뒤로 보이는 노적봉               중성문은 노적봉과 중취봉 사이 협곡에 쌓은 중성에 설치된 성문입니다. 중성은 지형이 평평해서 적에게 쉬운 공격지점으로 이중으로 중간에 성을 더 쌓아서 중성이라고 합니다. 중성문의 수비를 담당한 조선시대 군부대는 대서문과 대남문의 어영청 유영이었다고 합니다.

 

국립공원에서는 인화성물질 휴대와 취사행위가 금지 되어있습니다. 또한 음주 산행도 금지 되어있습니다.(막걸리 마시고 술 힘으로 등반하는 것도 옛날 말입니다.ㅋ)

잠시 계곡 물을 보며 예전 학교앞 문구점에서 팔던 추억의 과자 쫀디기를 먹어봤습니다.ㅋ

 

북한산 산영루                1603년 조선 문인 이정귀가 지금의 북한산을 유람하고 산영루로 내려 왔다고 전해지며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아름다운 시문을 남겼다고 합니다. 2014년에 복원해서 경기도 기념물 제223호로 북한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백운대는 2.4km나 남았습니다. 산영루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험난한 길이 나옵니다.

길이 험하다 보니 아래만 보고 한참을 걸었습니다. (산에 오르면 겸손해 진다고 하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네요.^^)

북한산 대피소                대동문에서 백운대로 가는 길목에 잠깐 쉬어갈 수 있는 공간과 화장실이 있습니다. (물을 많이 먹어서 화장실이 정말 간절했는데 역시나 죽으라는 법은 없나 봅니다.ㅋ) 중간 경로를 말씀 드리면, 북한산 탐방지원센터 - 중성문 - 산영루 - 중흥사 앞에서 이정표를 따라 오시면 됩니다.

용암사지 석탑 터                  대피소 근처에 남아있는 용암사지 석탑 터 입니다.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용암사는 북한산성을 쌓기 시작한 1711년(숙종37년) 이후에 87칸의 규모로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용암봉암문 일대의 산성수비와 승병들의 훈련장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승병을 강제해산한 갑오개혁(1894년)즈음 페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이 용암사 터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탑채가 대피소 근처에 남아있다.  현재 갑석과 탑신석, 옥개석 일부만 남아있는데, 남은 탑채를 볼 때 높이가 약 6m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 탑은 통일신라말 ~고려초에 건립된 것으로서, 이 탑을 통해 용암사가 1711년(숙종37)에 건립되었다는 사료의 기록과 달리 이미 이전부터 이곳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용암문                용안문은 북한산성 북쪽에 있는 암문으로 우이동으로 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암문은 일반 통문과 달리 은밀하게 다니는 비밀 통로로 1996년에 복원했다고 합니다.

 

노적봉                   노적봉(716m)은 봉우리 모양이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임진왜란 당시 군량미가 떨어져 고심사던 중 이 봉우리에 가마니를 덮어 군량미인 것처럼 속여 위기를 넘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백운 봉암문에서 바라본 만경대                탐방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 타의적으로(밀려서?ㅋ) 백운대 방향으로 이동하다가 만경대를 보았습니다. 백운봉암문은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위치한 성문으로 8개의 암문중 하나 입니다. 일제강점기 부터 위문으로 불려졌습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 것 처럼 암문은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적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했습니다.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                      힘들게 탐방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정상에서 수 많은 탐방객들과 함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속에 담고 갑니다.

 

을 좋아하는 분들은 질서 지키는 것도 좋아합니다.^^

외국인도 많이 방문하고 정상에서 사진촬영을 하기 위해 많은 줄을 서서 기다리시는데 연세 지긋한 노부부께서 새치기를 통해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항의를 하자 "자주 와서 그래요."하며 계속 사진촬영을 하는데 정상에 계신 모든 분들이 따가운 눈총을 줬습니다. (질서는 나 부터 지켜야 합니다. 솔선수범!)

 

아오는 길은 잘 가꿔진 길과 산성로를 따라 돌아서 왔습니다.

 

그동안 둘레길과 탐방로를 많이 다녔지만, 문화유산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 봤지만, 항상 자리를 지켜온 우리 소중한 문화 유산을 잘 알고 지켜야 겠습니다.

힘든 탐방을 통해 느낀 것은 혼자가 아닌 같이 할 때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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