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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한국사 능력시험! 할 수 있다] 42회차 문제와 풀이분석(3)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 3. 28.

 

우리 역사 길라잡이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한국사 능력시험 42회차 문제분석

누구에게나 방법은 있다.

#오늘은 세 번째 시간입니다.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의 제천행사와 풍습을 구분하는 문제는 빠지지 않고 출제되는 유형입니다. 그래서 핵심적인 키워드만 이해하고 있다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유형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서 알아두어야 할 핵심 단어들은 제천행사(영고, 동맹, 무천, 수릿날, 계절제)와 풍습(1책 12법, 서옥제, 민며느리제, 가족공동묘, 책화), 제정분리를 나타내는 천군과 소도 등입니다. (쓰고 보니 적지는 않네요.)


제시된 (가) 지문에서 중요한 부분은 '고구려에 예속되었다', '대인을 두고 사자로 삼아 함께 통치하게 되었다'입니다. 이 사료의 내용을 암기하고 계신 분들은 쉽게 아실 수 있지만, 모른다고 해서 어려운 문제도 아닙니다. 고구려에 예속되었다는 표현이 나온다면 무조건 옥저 아니면 동예입니다.


지문 (나)의 내용을 보면 더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이를 무천이라고 한다. 그리고 단궁과 반어피, 과하마가 나온다' 

무천이라는 표현에서 이미 동예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동예를 떠올릴 수 없으면 이렇게 기억하면 됩니다. 동예를 제시할 때는 단궁과 과하마가 반드시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는 '동이족'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동예’와 ‘동이’ 어감이 비슷하지 않나요?(조금 유치하지만, 시험을 위한 암기법입니다.) 

그럼 (가)의 지문은 동예가 아닌 옥저를 말하는 것이겠죠. (같은 곳을 나타내는 지문이 동일하게 나올 리 없습니다.)

1. 혼인 풍속으로 민며느리제가 있었다. 

'민'이라는 접두사는 꾸미거나 딸린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인데, ‘민며느리제’는 여자가 어렸을 때 남자 집에 가서 성장한 후 남자가 예물을 치를고 혼인을 하는 풍습입니다. 꾸밈이 없는 어린 여자를 일찍 데려오는 풍습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러한 풍습이 있는 곳은 농사가 이루어지는 농경사회라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농경사회에서 여성은 노동력으로서 더욱 중시되었기 때문입니다. 농사가 잘 이루어지던 곳. 그곳은 명칭에서 나타나듯이 ‘토지가 기름지다'는 뜻을 지닌 옥저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정답입니다.

2. 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여 책화가 있었다. 

'책화'라는 표현에서 동예를 지칭함을 알 수 있습니다. 경계를 중시했다는 것은 영역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혈족과 같이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유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동예에서는 다른 씨족과 결혼을 하는 족외혼에 엄격했다고 합니다. 책화는 그 말뜻 그대로 화를 면하기 위해서 책임을 진다는 것인데, 부락을 함부로 침범한 죄를 면하기 위해 노비, 소, 말로 배상했던 것입니다. 노비, 소, 말은 수렵보다는 농경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동예 역시 농사를 중요시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래서 동예의 ‘무천'이라는 제천행사는 10월에 열렸습니다.(수확의 계절이죠.) 책화의 풍습은 강력한 권력이 있는 곳에서는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그 때문인지 여러 사료에서 기술된 동예의 풍속을 보면 그곳에는 대장군이 없고 읍군, 삼로 등의 관직이 있었다고 하죠.

3. 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하였다. 

왕 아래에 가축의 이름을 딴 마(馬)가(말), 우(牛)가(소), 저(猪)가(돼지), 구(狗)가(개)라는 대가들이 있고 이들이 다스리는 행정 구획을 사출도로 했다는 데서 5부족 연맹체였던 부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민속놀이의 윷놀이의 기원이 바로 부여의 5부족 연맹체에 있다고 보기도 하는데, 도(돼지), 개(개), 걸(양), 윷(소), 모(말)는 각 부족이 숭배했던 토템 신앙이라고 하죠. 윷놀이를 생각하시면 부여의 풍습에 대해서 쉽게 암기하실 수 있는데, 왕이 있지만 각 부족의 권한이 비등해 수해나 한해(가뭄으로 인한 피해)로 인한 피해의 책임을 왕에게 묻기도 했습니다. (말, 소, 개, 돼지, 양 사이에 먹이사슬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을 연상하시면 사출도와 왕의 권한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달리는 속도에 따라 가축을 구분한 것에서 수렵의 풍습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형이 죽으면 아우가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는 형사 취수제의 풍습도 수렵을 중시했던 흉노의 그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부여의 '영고'라는 제천행사는 농경사회의 수확이 이루어지는 10월경이 아닌 12월에 열렸습니다. 왕이 죽으면 많은 사람들을 함께 묻는 순장의 풍습도 있었는데, 윷놀이에서 여러 말판을 겹쳐 업어서 가는 것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부여에서는 도둑질을 하면 그 물건값의 12배를 배상하는 1책 12법이 있었습니다. 후에 부여에서 파생되는 고구려에도 이와 같은 법률이 있었죠.

4. 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존재하였다. 

삼한(마한, 진한, 변한)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고조선 위만 정권을 얘기하면서 '준왕'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준왕'은 뱃길로 한반도 남부로 내려가 한왕(韓王)을 칭했다고 하는데(풍백, 우사를 거느렸던 그 옛날 고조선의 환웅을 기억하시고..), 이 사실과 삼한의 풍속을 연결해서 생각하시면 삼한을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그냥 암기를 위한 방편입니다.) 제사장을 뜻하는 '천군(天君)'은 농경사회에서 하늘을 숭배하는 신앙의 모습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 맡은 가장 중요한 임무가 농사의 풍작을 비는 일이었는데, 농사를 중요하게 여겼던 삼한에서 제사장의 권한이 큰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삼한의 위치를 보면 공교롭게도 한반도 남쪽의 곡창지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5월의 수릿날과 10월의 계절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풍습도, 그리고 저수지의 축조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를 하면 쉽게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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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푸른 소나무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이 잠시 걷힌 순간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푸른 소나무를 찍어 보았습니다. 때로는 그 본래의 모습이 꾸며낸 무엇보다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지치고, 세상살이에 지칠 때 '순수'를 갈구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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