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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古mail] 일망타진(一網打盡) 한꺼번에 잡자.

by 행복사냥이 2020. 9. 2.

오늘 도착한 고사성어 일망타진(一網打盡)

 

 


범죄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기관들의 최대 성과, 바로 일망타진(一網打盡)입니다. 언제인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실제로 "검, 경, 국정원은 제주공항을 중심으로 하는 국내 밀입국 조직을 일망타진(一網打盡)했습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역시나 공격적인 말입니다.^^

 

오늘은 한 번의 그물질로 모두 잡는다는 뜻으로, 범인이나 어떤 무리를 한꺼번에 모조리 잡을 때 쓰는 말인 일망타진(一網打盡)을 공격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한자를 알아보겠습니다.

一 : 한 일

網 : 그물 망

打 : 칠 타

盡 : 다할 진

오늘은 조금 익숙하지 않습니다.

 

유래는 송사(宋史) 인종기(仁宗紀)에 나옵니다.

송사(宋史)는 중국 송나라에 관한 기전체의 역사서입니다. 정사의 하나로 원나라 탈탈 등이 황제의 명으로 편찬했습니다. 남송이 멸망하고 원나라가 수집한 송나라 국사, 실록, 일력을 바탕으로 1345년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료가 빠지고 삭제돼서 완벽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알아보면, 송(宋) 나라 인종 때의 일입니다. 인종은 대외적인 업적면에서 별로 내세울 것이 없지만, 대내적으로는 많은 업적을 남겨 한(漢) 나라의 문제(文帝)와 더불어 대표적인 어진 임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종은 과거제도를 통해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고 학문을 장려해서 문치(文治)를 시행했습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한기(韓琦), 범중엄(范仲淹), 구양수(歐陽脩), 사마 광(司馬光), 장재(張載), 정호(程顥) 등의 뛰어난 인재들이 임금을 보좌했고, 그의 치세를 ‘경력(慶曆)의 치(治)’라 했습니다.

그렇다고 조정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인재들이 많다보니 서로 자기주장이 강했습니다. 명론(名論)과 탁설(卓說)이 너무 많고 매번 충돌이 일어났죠. 결국, 이들은 당파(黨派)를 이루어 양당이 서로 교대로 정권을 잡았는데, 20년 동안 내각이 17번 바뀌었습니다. 이를 ‘경력의 당의(黨議)’라고 불렸습니다.

옛날 중국 송나라와 지금의 우리나라, 다른 점이 별로 없네요.ㅠㅠ

그 무렵, 강직하고 청렴하기로 소문난 두연(杜衍)이 재상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관습으로 임금이 조서를 내릴 때, 신하들과 상의를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내강(內降)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두연은 이런 관행이 올바른 정치를 막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임금의 조서가 내려오면 수십 장이 쌓이기를 기다렸다가, 말없이 되돌려 보냈고, 두연의 이런 행동은 성지(聖旨)를 구부리는 것이라 하여 조정 대신들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인종도 재상이란 작자가 자신의 생각을 묵살했기 때문에 언짢아했습니다.

마침 두연의 사위 소순흠(蘇舜欽)이 반고지(反故紙)를 판 국고금으로 신(神)을 제사 지내고, 관청의 손님을 초대해 기녀를 불러 주연을 베풀고 공금을 유용했습니다. 두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어사대부 왕공진(王拱辰)이 곧 그를 탄핵하고 잡아서 취조하자 연루된 사람이 여러 명 나왔습니다. 

이들을 모두 하옥시킨 왕공진이 기뻐하며, 

“나는 한 그물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잡았다 [吾一網打去盡矣].”라고 말했습니다.

‘일망타진(一網打盡)’이 바로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두연은 이 사건으로 재상의 자리에서 70일 만에 물러났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망타진(一網打盡)은 범인 검거에 사용됩니다.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의 과시 또는 완벽함이라는 자만심을 조심하자로 볼 수 도 있는데, 지금은 고정되어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거친 단어입니다.^^)

중간에 잠깐 말씀드렸지만, 중국 송나라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나라 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 씁쓸합니다. 이제 그만 싸우고 잘 살아봐요.^^

출처는 두산백과(두피디아), 다음 검색, 네이버 검색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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