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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여행

[사찰여행] 파주 용암사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by 행복사냥이 2018. 8. 11.

나를 위한 힐링여행, 미스테리의 시작

파주 용암사

 

 

Ι 미스테리의 시작, 파주 용암사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우리 주변에는 보물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우리가 그 보물들을 지나쳐 갈 뿐입니다.

지난 번 소개해드린 파주 보광사 인근에도 유명한 보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입니다 

말 그대로 용미리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서 있는 모습의 부처님 두 분이라는 뜻인데, 정확하게는 파주 용암사에 있는 우리나라 보물 93호 쌍미륵이 오늘 소개해 드릴 보물입니다.

참고 : 미륵신앙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미륵신앙은 석가모니불께서 그 제자 중 한 사람인 미륵에게 장차 성불하여 제1인자가 될 것이라고 한 것을 근거로 삼고, 이를 부연하여 편찬한 미륵삼부경을 토대로 발생된 신앙입니다. 미륵보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덕을 닦고 노력하며, 이 세상을 떠날 때 도솔천에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만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세상에서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 그를 좇아 제일 먼저 미륵불의 법회에 참석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미륵보살은 인도의 바라나시국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으며 수도하였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은 뒤 도솔천에 올라가 현재 천인(天人)들을 위해 설법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부처가 되기 이전의 단계에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 부르고, 석가모니불이 입멸(入滅)한 뒤 567천만 년이 되는 때,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 성불하여 3회의 설법으로 272억 인을 교화한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미륵보살이 도솔천에 머무르다가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기간 동안, 미래를 생각하며 어떻게 중생을 제도할 것인가 명상에 잠겨 있는 자세가 바로 미륵반가사유상입니다. 이 미륵반가사유상의 불상은 삼국시대에 많이 조성되었습니다.

마애이불입상이라는 표현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한자라서 그렇습니다.

알고보면 어려울 내용이 아닙니다. 마애불(磨崖佛)은 바위에 새긴 불상이라는 뜻입니다.

한국에서는 7세기 전반부터 백제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대표적인 문화재가 바로 서산마애삼존불(용현리 마애석불, 국보 제84)’입니다.

[서산 마애삼존불] 

용미리 마애불은 서산 마애삼존불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시기적인 차이가 있는데, 서산 마애삼존불은 삼국시대의 추정되는 반면 파주 용미리의 마애불은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견을 보이는 학설이 있는데, 이 내용은 참고로 설명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마애불의 특징에서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마애불은 일반적으로 기형적으로 거대화한 신체 세부화를 통해 정신적인 위압감을 주는 것을 특색으로 합니다. (고려시대 지방 호족의 성장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럼 저와 함께 용암사 쌍미륵을 보러 갈까요? 가 즈아~^^

 

Ι 일주문(一柱門)

보통 사찰에서 처음 만날 수 있는 일주문은 기둥이 일직선상의 한 줄로 늘어서 있다고 해서 일주문(一柱門)이라고 합니다. 사찰로 통하는 첫 번째 관문이죠.

일주문은 일심(一心)을 의미합니다. 신성한 사찰 경내로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로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용암사 일주문]  

 

Ι 삼성각(三聖閣)

일반적으로 사찰에는 부처님을 모신 법당 주변에 조그마한 삼성각이 있습니다.(용암사는 왼편에 있습니다.)

민족 고유의 토속신들을 불교적으로 수용한 전각입니다. 흔히 산신과 칠성과 독성(獨聖)을 함께 모시고 삼성각(三聖閣)이라고 합니다. 따로 따로 모실 때는 산신각, 독성각, 칠성각이라는 독립된 이름의 편액을 붙이기도 합니다.

[용암사 삼성각]

 

Ι 동자상과 칠층석탑 

본래 쌍미륵 중 좌측 미륵불상 오른쪽 어깨 앞에 동자상이, 7층 석탑은 당시 동자상의 뒤편에 세워져 있던 것을 1987년 지금의 삼성각 인근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일설에 따르면 이승만대통령 모친께서 용암사 쌍미륵 석불에서 득남 발원기도를 하여 이승만대통령이 태어났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용암사 동자승과 7층 석탑]

 

Ι 용암사 마애불

마애불로 향하는 계단에는 양옆으로 미륵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갓을 쓰고 있는 미륵불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아기자기하기도 하지만 역시 미륵불이 모셔져 있는 곳이라는 느낌입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웅장하게 두 분의 미륵보살이 계십니다.

 

 

보물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는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은 거대한 천연 암벽에 2구의 불상이 우람하게 있는 모습입니다.

머리에 돌갓을 얹어 토속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인 신체비율을 무시한(?)한 거대한 모습이 여기서도 나타납니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圓笠佛)은 목이 원통형에 두 손은 가슴 앞으로 연꽃을 쥐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사각형의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은 합장한 손모양만 다를 뿐 신체조각은 왼쪽의 불상과 같습니다. 지역에 전해오는 구전에 의하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男像), 모난 갓의 불상은 여상(女像)이라고 합니다.

 

1932년에 발행된 전등사본말사지에 기록된 내용에 보면 불상의 조성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고려 13대 왕이었던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元信宮主)까지 맞이했지만, 여전히 왕자가 없어 걱정하던 터에 어느 날 궁주가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꿈에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기슭에 있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말하고는 사라져 버렸고, 이에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 알아보니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어 이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태어났다.  

누가 봐도 고려시대로 짐작되는 이 마애불의 조성시기에 대한 이견도 있습니다. 고려시대가 아닌 조선 세조 때 만들어진 불상이라는 내용인데요.

불상의 몸체에 조성명문 200여자가 있었는데, 이 내용을 판독해 보니 이 용미리 석불이 세조의 왕생정토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며, 세조와 그 부인 정희왕후가 미륵부처 용화법회에 참석에 깨달음을 기원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불상을 만들 때 시주한 사람들의 내역 또한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는데, 세조의 등극에 협조했던 양녕대군의 둘째아들, 함양군, 한명회의 셋째부인 정경부인 이씨 등 약 20여명의 내역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를 근거로 용미리불상이 조선 세조와 그의 부인인 정희왕후를 미륵불의 형상으로 묘사한 부부상이라는 주장이 나타났는데, 불상이 남녀를 나타내고 있다는 지역의 구전설화와 유사한 부분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여기에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의 고향이 파주라는 점과 불상이 쓰고 있는 원정모(圓頂帽)형태의 보개가 선종의 재위시기인 고려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그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상의 모습이 고려시대의 양식이라는 점은 여전히 고려시대의 불상이라는 주장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지난 번 보광사도 알면 알수록 흥미롭고 재미있는 사찰이었지만, 파주 용암사의 쌍미륵은 그 조성배경에 대한 여러 설들이 불상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하는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 번 방문을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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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9 - [행복탐험대] - [다시 보는 문화유산] 삶과 죽음의 경계 파주 "보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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