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sanyang2
본문 바로가기
힐링여행

[사찰여행] 속리산 속 문화유산 법주사

by 행복사냥이 2018. 9. 28.

나를 위한 힐링여행, 속리산 속 문화유산

법주사

 

 

 

 

불법(佛法)이 머무르는 곳

속리산 법주사를 이 곳에 옮겨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내용이 조금 많아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끝까지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저는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합니다. 산은 바다처럼 해방감을 주는 탁 트인 맛은 덜하지만 그 오르내림의 즐거움에 빠져들게 되면 산이 주는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아무 말 없이 버스에 올라타 낯선 곳에서의 혼자 있음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혼자보다는 둘이 더 좋고, 둘 보다는 셋이 더 좋아지더군요.

산에 오르는 것도 정상을 정복했다는 기분보다는 산새가 지저귀는 오솔길을 걷는 게 더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서 가볍게 트래킹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됩니다.


속리산 법주사. 살면서 3번을 오르면 신선이 된다는 문장대와 법주사로 유명한 곳이죠. (법주사는 불교대학과 승가대학등 스님으로 출가를 하는 유명한 사찰입니다. 법주사 소속사찰은 112개, 암자는 12개 정도 있는 대형 사찰입니다.)

전 문장대를 이미 3번 올랐습니다. ^^. 신선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알게 되면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ㅎㅎㅎ

올 봄, 하늘을 뒤덮었던 미세먼지가 무색하게 요즘 하늘은 완연한 가을 하늘입니다.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더니, 구름도 덩달아 살이 찌는지 이른 아침부터 뭉게구름이 몽실몽실한 아침이었습니다.

20년 전의 어느 날처럼 문득 속리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바쁜 일이 없던 주말이어서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떠났습니다.

속리산 정이품송          속리산에 오르기 전 정이품송을 만났습니다. 수령이 600년이 된다는데, 안타깝게도 강풍과 폭설로 아름다웠던 예전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속리산에 왔다는 그 기분만은 완벽하게 충족시켜 줍니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에 해당하는 품계를 하사받은 것은 조선의 세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너의 존재를 역사에 묻다.(정이품송)

세조 재위 10년 음력 2월 요양을 목적으로 온양, 청원을 거쳐 보은 속리산을 방문했는데, 말티재를 넘어 속리산으로 가는 중 길목에 있는 소나무에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이 걸릴 것 같아 "연 걸린다"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져 있던 가지가 스스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돌아가는 길에는 근처에서 갑자기 비가 와서 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고 하는데, 세조가 "올 때는 신기하게 나를 무사히 지나도록 하더니 이제 갈 때는 비를 막아주니 참으로 기특하다"면서 이 소나무에게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이품의 품계를 하사했다고 합니다.

이 정이품송은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보기 드물게 수령 600년의 오래된 소나무라고 합니다.)

정이품송을 지나 차량을 주차하고 걸어서 속리산을 향합니다.

속리산 입구 조각공원        속리산 입구 가까운 곳에 유료주차장이 있기는 한데, 아시는 분들은 식사를 할 식당에 주차를 하고 다녀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소한 꿀팁입니다 ^^)

속리산 입구 교량의 만()자 문양             하천을 가로지르는 교량에는 사찰의 영역을 나타내듯 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법주사 입구의 문장대 사진           이미 신선될 자격은 갖췄으니 문장대를 올라갈 생각이 없어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불법이 머무르는 법주사

드디어 법주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어른의 입장료는 4천원, 이것저것 할인해준다고는 써 있는데, 정작 제게 해당되는 것은 없네요. ㅠㅠ

법주사 일주문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은 날이었습니다.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라고 현판에 써 있는 글귀를 보며 일주문을 지나갑니다.

일주문의 현판            일주문 뒤로는 속리산 대법주사(俗離山 大法住寺)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광무'라는 글자를 보니 대충 그 현판의 제작 시기가 짐작됩니다.

 

법주사에는 굉장히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3개의 국보와 13개의 보물, 9개의 유형문화재까지 꼼꼼히 돌아봐도 하루 안에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로 그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눈에 잘 보이는 문화재만 담아가기로 했습니다

속리산은 해발 1,057m의 천왕봉을 비롯해 9개의 봉우리가 있어 원래는 구봉산이라 불렀으나 신라 때부터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법주사 역사

속리산의 대표사찰인 법주사는 553년 의신조사가 서역에서 불경을 가져와 산세가 험준함을 보고 큰 절을 세워 법주사라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신라 혜공왕 12(776) 진표율사가 대규모로 중창하였으며, 고려시대를 거쳐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으나, 조선시대 정유재란으로 전소되었습니다. 조선 인조 2(1624)에 사명대사 및 벽암대사에 의해 다시 중건되고 보수, 증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법주사 금강문              정신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금강문을 마주했습니다.   

법주사 금강역사(밀적금강)           금강문은 인왕문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에서는 불교의 수호신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보통 왼쪽에는 밀적금강,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이 서 있습니다. '음' 하고 입을 다무는 밀적금강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법주사 금강역사(나라연금강)           하고 입을 벌린 나라연금강은 나쁜 세력을 공격하는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아’는 범어의 첫째 글자이고, ‘훔’은 끝 글자라고 합니다. 이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찰에서는 상의를 입지 않고 옷을 허리에 걸친 채 주먹을 쥐어 밖에서 안으로 한 팔을 올리고 한 팔을 내린 자세를 취하거나, 한 손으로 칼을 잡고 있는 모습 등도 있습니다.

 

금강역사가 지키는 금강문을 지나고 나니 다시 천왕문이 보입니다.

법주사 천왕문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인 사천왕을 모신 건물로 본래 맑고 깨끗해야 할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을 모신 전각입니다. 

 

법주사 다문천왕             쪽을 수호하고 비파를 들고 있는 수호신 입니다. 다른 사찰에서는 흑색 피부색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리석음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중생을 이도하려는 서원을 갖고 있습니다.

법주사 지국천왕           동쪽을 수호하고 오른손에 칼을 쥐고 있는 수호신입니다. 다른 사찰은 피부색을 청색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착한 이에게 복을 주고 악한 에게 벌을 주려는 서원을 갖고 있습니다.

법주사 증장천왕           남쪽을 수호하고 오른손에 용을 쥐고 왼손에는 여의주를 쥐고있는 수호신입니다. 다른 사찰은 피부색을 적색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만물을 소생시키려는 서원을 갖고 있습니다.

법주사 광목천왕           서쪽을 수호하고 오른손에 삼지창을 쥐고 왼손에는 보탑을 들고 있는 수호신입니다. 다른 사찰은 피부색을 백색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악한 자에게 고통을 주어 불법에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서원을 갖고 있습니다.

법주사 철확(철솥             왕문을 향하기 전 오른편의 철확(철솥)을 향했습니다. 본래 법주사 공양간 근처에 있던 것인데, 큰 사발형상을 하고 있는 이 철확은 쌀 40가마를 담을 수 있는 규모로 법주사에 전해오는 말로는 법주사가 한창 번성하여 3000명의 승도가 운집해 있을 때 장솥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아무런 문양이나 기록이 없어 제조시기, 제작자 및 제조방법 등을 알 수는 없지만 주철로 주조된 대형의 주물솥이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법주사 당간               금강문의 왼편으로는 당간지주가 보입니다. 당간이란 찰() 또는 찰주(刹柱)라 불리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절을 사찰(寺刹)이라 말하는 것은 절에 당간 즉, 찰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종파를 표시하기 위해 당간 위에 특정한 색깔의 깃발을 내걸기도 했답니다. (솟대와도 같은 기능처럼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했다고도 하죠.) 현재 전하는 법주사 당간지주는 고려 목종 7(1006)에 조성된 것으로 조성 당시의 높이는 전체 약 16m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 고종 3(1866) 국가재정마련을 위한 당백전 주조라는 대원군의 명에 의해 사찰의 수많은 금속물들이 수거된 바 있었는데, 당시 이곳의 철당간 역시 파괴되었고, 이어 순종 시기(1910년 경) 이곳의 철당간은 22m의 원래 모양대로 복원되었으며, 1972년 다시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법주사 석련지             당간의 앞쪽에는 석련지가 있습니다. 신라 성덕왕 19(720)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8각의 받침석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된 간석을 놓았습니다. 마치 연꽃이 둥둥 떠 있는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우리나라 국보 제64호에 지정되어 있습니다.

법주사 팔상전           개인적으로 법주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화재 중 하나인 팔상전입니다신라 진흥왕 14(553)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그 후 임진왜란 때에 불타버려 조선 인조 4(1626)에 다시 지어졌는데 조선의 승병장인 사명대사가 주관했다고 합니다. 팔상전은 5층 목조탑 건축으로 한국에 남아있는 유일한 목조탑입니다. 내부에 석가여래의 일생을 8장면의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가 있어 팔상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추정하는데 과거에 왔을 때는 공사 중이라 제대로 된 모습을 보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참배객들의 출입이 가능해 저도 이번에 내부를 구경하고 왔습니다. 팔상전은 우리나라 국보 제5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법주사 원통보전            팔상전을 지나면 왼편으로 원통보전이 있습니다. 원통보전은 관세음보살을 주존불로 모시고 있는 전각을 말하는데, 법주사의 원통보전에는 보물 제1361호로 지정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건축양식이 지붕 중앙에서 4면으로 똑같이 경사가 진 사모지붕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런 형태는 불국사의 비로전과 법주사 원통보전만이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원통보전 역시 보물 제961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법주사 희견보살상               희견보살상입니다. 불교에는 많은 보살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견보살은 저에게도 생소한 보살인데요. 희견보살은 자신을 불태워 소신공양(소신공양)을 한 보살이라고 합니다. 이런 공덕으로 약왕보살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데, 법주사 외에 월정사에도 이 희견보살 석상이 있다고 합니다.

법주사 대웅보전              대웅보전으로 향했습니다. 신라 진흥왕 14(553)에 의신조사가 처음 건립하여 혜공왕 12(776) 진표율사가 고쳐지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불타 버린 후 인조 2(1624)에 벽암대사가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법주사 대웅보전은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불전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곳입니다. 내부에는 보물 1360호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법주사 사천왕석등             대웅보전 앞으로 보물 제15호로 지정된 사천왕석등의 모습도 보입니다.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 양식으로 불교에서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을 사천왕(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이라 하는데 팔각 중 4면에는 창을, 그리고 나머지 4면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였습니다.

법주사 쌍사자 석등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는 쌍사자 석등도 있습니다. 신라의 석등 중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 석등은 성덕왕 19(720)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8각의 바닥돌 위에 사자 조각이 올려져 있습니다. 사자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며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상대석을 하나의 돌에 조각한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나라 국보 제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법주사 팔상전과 금동미륵대불              팔상전과 함께 찍은 금동미륵대불의 모습입니다. 경내에 웅장하게 서 있는 이 미륵대불은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금동미륵대불로 조성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러다 조선시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몰수되어 1964년에 시멘트로 다시 불사를 했다고 합니다. 시멘트로 조성된 미륵대불이 1990년에 청동대불로 다시 조성되었다가 2000년에 들어 처음 조성되었던 당시의 모습을 찾아주자 해서 금동미륵불 복원공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억하기로도 제가 처음 본 미륵대불의 모습은 청동미륵대불이었습니다.

법주사 석조             법주사에는 많은 국보와 보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 좋아하는 곳이기도 한데, 처음 가시는 분들은 모르고 지나치는 곳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법주사의 석조입니다. 국보나 보물은 아니지만 실제로 물을 담아두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입니다. 최근에 만들어 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 역시 무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법주사 마애여래의상               또 하나 지나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이 마애여래의상입니다. 법주사 내의 많은 작품들이 신라시대에 조성된 것과 달리 이것은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입니다. 높이가 6m나 되는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이 여래 좌상은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의상으로 옆에 조각된 지장보살과 함께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불상입니다. 보물 제21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번뇌와 헤탈의 마음아. 훨훨 날아라!

법주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찰 중 하나입니다.

많은 문화재가 있어서 좋아하고, 특히 가벼운 산행을 즐길 수 있어서 더욱 좋아하는 곳입니다.

계절마다 이곳을 와봤지만, 제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계절은 역시 가을이었습니다.(단풍이 절정일 때 더 좋습니다.^^)

청명한 가을하늘에 펼쳐진 법주사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절경입니다. (마침 볕 좋은 가을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생에 3번을 오르면 신선이 된다고 하는 문장대도 있습니다.

혼자가 아닌 가족, 연인들과 함께 속리산 여행을 추천드립니다.

 

모든 자료의 출처는 속리산 법주사 문화재 소개 자료와 법주사 홈페이지 등을 참고했습니다.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행복사냥이'를 검색하면 글을 볼 수 있어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