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sanyang2
본문 바로가기
힐링여행

[파주시] 율곡 이이의 어린 시절 놀이터 화석정

by 행복사냥이 2018. 10. 3.

나를 위한 힐링여행, 율곡 이이와 조선 학문

화석정

 

 

 

화려하지 않은 화석정

 

임진강 평화누리 공원을 다녀와서 집으로 돌아가기에 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곳이 없나? 그러고 보니 파주 25경이 있었군요.ㅋ)   

아쉬운 마음에 화석정에 들려보기로 했습니다.(파주 25경 중 6경입니다.  출처 : 파주시)

화석정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 위치한 화석정. 조선시대 건축 양식으로 팔각지붕 겹처마가 특징이고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61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화석정

세종 25년(1443) 율곡 이이(李珥)의 5대 조부인 강평공(康平公) 이명신(李明晨)이 세운 것을 성종 9년(1478) 율곡의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보수하고 몽암(夢庵)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정자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당나라 때 재상 이덕유(李德裕)의 별장인 평천장(平泉莊: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고 함)의 기문(記文) 중에 보이는 ‘花石’을 따서 정자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이이(李珥)가 다시 중수하여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 난 후에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시와 학문을 논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그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이곳을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또한 왜구의 침공에 대비 해 10만양병설을 주장한 이이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은 선조가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가던 중 한밤중에 강을 건널 때 이 정자를 태워 불을 밝혔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그 후 80여년간 빈터만 남아 있다가 현종 14년(1673)에 이이의 증손인 이후지(李厚址)·이후방(李厚坊)이 복원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정자는 1966년 경기도 파주시 유림들이 다시 복원하고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단청되고 주위도 정화되었다. 건물의 정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고 내부에는 이이가 8세 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가 걸려 있다.

출처 : 위키백과

화석정 현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썼다는 현판입니다.

잠깐만요!  역사는 역사일 뿐 입니다. 우리 좋은 점만 보기로 해요. (특정인이 나왔다고 오해하지 마세요.^^)

율곡 선생이 8세에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팔세부시를 알아보겠습니다.(위 사진에서 현판 뒤로 조금 보이시죠?)

팔세부시(八歲賦詩)

 

林亭秋已晩 / 騷客意無窮

숲에는 가을이 저물어 가매 / 시인의 시정은 그지없어라. 

遠水連天碧 / 霜楓向日紅
물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 단풍은 햇빛 따라 불타올라라. 

山吐孤輪月 / 江含萬里風
산에는 둥근 달이 솟아오르고 / 강에는 끝없는 바람 어려라. 

塞鴻何處去 / 聲斷暮雲中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 저무는 구름 새로 소리 끊겨라.

화석정 500살 느티나무                지난 세월을 느낄 수 있는 고목입니다. 아마도 율곡 이이 선생께서도 저 나무를 보셨겠지요?

 

화석정의 가장 큰 특징은 임진강을 굽어볼 수 있고 날씨가 좋을 때 자세히 보면 서울의 삼각산과 개성의 오관산이 보인다고 합니다.

화석정에서 바라본 임진강                   날씨가 맑지 않아서 서울 삼각산과 개성의 오관산은 보지 못 했지만 상상을 통해서 보이는 것 같습니다.^^

 

 

화석정은 정자와 500년 느티나무가 인상적입니다.(볼 거리를 너무 많이 기대 하지 마세요.^^)

파주의 다른 볼 거리와 함께 보신다면 효율적일 것 같네요.^^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에서 "행복사냥이"를 검색하시면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