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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여행

[사찰여행] 천 년을 북한산과 함께한 흥국사

by 행복사냥이 2018. 10. 7.

나를 위한 힐링여행, 북한산 천년고찰

흥국사

 

 

 

북한산을 품은 천년고찰, 고양 "흥국사"

서울 은평구를 지나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에 다다르기 전, 천년고찰 흥덕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문화재는 많지 않지만 어느 문화재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을 품고 있는 사찰, 흥국사를 소개해 볼까합니다.

등산을 취미로 하는 편은 아니라 전국의 명산을 찾아가는 수고로움을 즐기지는 않지만 사찰을 가는 것은 좋아합니다.

사찰에는 시간을 견뎌낸 고고한 힘이 있습니다.

작은 돌담과 서까래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비바람의 흔적. 그리고 그로 인해 낡아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제가 사찰 답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흥국사

흥국사(興國寺)는 한미산(漢美山, 일명 노고산) 남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입니다.

사찰에 봉안되어 있는 미타전의 아미타불상 복장연기문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인 661(신라문무왕 원년)에 당대 최고의 고승인 원효스님이 북한산 원효암(元曉庵)에서 수행하던 중 북서쪽에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산을 내려와 서기(瑞氣)를 발하고 있는 석조약사여래를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원효스님은 인연도량이라 생각하여 본전에 약사부처님을 모시고 '상서로운 빛이 일어난 곳이라 앞으로 많은 성인이 배출될 것이라며 '흥성암(興聖庵)'이라는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그 곳이 바로 지금의 흥국사입니다.

창건 이후 사찰의 역사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료는 전해지지 않으나, 1686(조선 숙종 12)에 중창한 사실과 영조시대에 크게 발전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특히, 영조가 1770년에 자신의 생모 숙빈 최씨(淑嬪崔氏)의 묘원인 소령원(昭寧園)에 행차하던 중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이때 길에 이곳에 들러 묵었으며 이때 절 이름을 '흥국사'로 바꾸게 하고(이 때, 할미산 또는 노고산으로 불리던 산의 이름도 한미산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직접 약사전의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하여 국가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왕실의 원찰로 삼았다고 전해집니다.

그 후 몇 차례의 중창이 이루어져 오늘날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흥국사는 서울 도심과 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 높은 산중에 위치한 사찰도 아닙니다.

사찰의 입구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걷기를 어려워하는 어린이들도 쉽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흥국사를 찾은 이날도 근처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소풍을 왔었습니다. ^^

흥국사 일주문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 한줄로 세운 기둥으로 인해 일주문으로 부릅니다. 이러한 양식은 일심(一心)을 뜻하는데, 청정한 도량에 들어가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일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왕문, 불이문과 함께 사찰로 들어서는 세 문의 하나입니다.

 

흥국사가 천년고찰의 명성을 가지고 있어 오래된 목재로 기둥이 만들어진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면 콘크리트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일주문의 현판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정치인으로 잘 알려진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의 편액글씨로 알려져 있는데,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82세에 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흥국사 불이문               불이문 뒤에 해탈문이 있습니다.

흥국사 해탈문                 이 불이문의 반대편에는 해탈문이라는 현판이 있습니다. (앞에서 보면 불이문, 뒤에서 보면 해탈문이라는 현판이 따로 있습니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며, 세속과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는 이 불이문은 동전의 양면처럼 해탈문과 맞닿아 있는데, '불이(不二)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 곧 해탈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양수리 수종사에서도 설명을 드렸는데 기억이 나시죠?^^)

 

불이문이 세워진 것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며 세월이 흐르면 이 역시 그만한 역사의 힘을 지니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불이문을 통해 액자 속 그림처럼 보이는 흥국사의 전경이 인상적입니다.

흥국사 약사전                 흥국사는 규모가 크지는 않습니다. 불이문을 통과해 경내로 들어서면 한 곳에 서서 둘러봐도 그 규모가 한 눈에 들어올 정도입니다. 흥국사의 본전인 약사전과 함께 명부전의 모습도 보입니다. 앞서 이야기 한 바대로 흥국사의 창건은 약사여래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영조가 직접 하사한 편액 글씨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흥국사 대방(大房)                   약사전의 맞은 편으로 흥국사의 대방(大房)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흥국사의 가장 큰 건축물인 대방은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어 일명 미타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일제 강점기에 증축, 보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방은 그 한자의 뜻 그대로 염불당 형식의 큰 방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스님들이 기거하며 불도를 닦는 승방(僧房)과 부엌, 누각, 마루, 툇마루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조선 말기 염불이 성행하고 접대를 위한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사찰의 여러 기능을 합한 이러한 건축양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흥국사의 대방은 조선 말기 대방의 전체적인 형태와 구조를 원형대로 잘 보존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흥국사 삼성각

경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자승 인형의 모습

 

흥국사의 전경                 흥국사는 경내의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자리잡고 있는 느낌입니다. 과하지도 않고 꼭 필요한 것들만 있는 미니멀리즘의 소박함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웅장한 위압감보다는 정적이고 편안함을 주는 분위기입니다.

 

북한산을 바라볼 수 있는 쉼터

 

쉼터에서 바라 본 북한산                   흥국사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은 흥국사 그 자체의 매력에도 그 이유가 있지만,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흥국사에서 바라다 보이는 북한산의 절경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봄에 쉼터에서 바라 본 북한산                   미세먼지로 북한산이 잘 보이지 않네요. ㅠㅠ

봄 흥국사에서 본 북한산

 

경내를 돌아 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관람객이나 등산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의자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제가 종종 흥국사를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곳에서 바라다보는 북한산 절경 때문입니다.

미세먼지 지수가 높은 봄철에는 맑은 날을 보기 힘들었던 탓에 이 의자에 앉아서도 북한산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청명한 가을 날씨가 하늘을 덮을 때면 이곳에서 보이는 북한산의 모습만으로도 이 흥국사에 와볼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기자기함과 북한산의 아름다움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흥국사, 삶의 쉼표를 찍고 오실 분들에게는 이 흥국사를 적극 추천합니다.

모든 자료의 출처는 흥국사 문화재 소개 자료와 흥국사 홈페이지 등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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