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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다시보는 현대사] 70년대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마약왕'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11. 3.

아름다운 과거와 흑역사 바로알기

70년대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마약왕'들




사를 알아야 미래를 대비한다.

 

"다시 보는 문화유산을 포스팅하면서 우리나라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문화유산을 소개해 드렸습니다.(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사냥이의 지난 글 중 부산에 대한 지명유래를 기억하시나요

정확한 정보와 사실을 전달해 드리기 위해 사전에 자료조사를 하고 있습니다.(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지금에서야 고백합니다만, 부산에 대한 자료조사를 하다가 1970년대 우리나라 어둠의 현대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고등학교 시절 역사 선생님께서 항상 수업시간 전에 강조하셨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생각나네요.

여러 번 망설이다가 흑역사도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서 아프지만, 무지해서 몰랐지만, 똑같은 흑역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 포스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포스팅을 하면서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배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한마디로 내용이 조금 딱딱할 수 있어요.^^)


얼마 전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부산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치열했던 만큼 그 태동의 시기에서 한복판에 위치해 있던 부산은 그 속에서 펼쳐진 삶의 모습도 치열했습니다.

부산 광안리 해변        역광에 비친 광안리 해변의 아이들입니다. 


최근에 제가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이 하나 있는데, 그 책에 인류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하고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약으로 모르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르핀은 전쟁 영화에서 많이들 보셨죠?)


모르핀을 짧게 설명하면 양귀비의 씨방에 상처를 내면 하얀 우윳빛 즙이 떨어지는데, 이 즙을 잘 모아 말린 것이 아편이고, 이것에서 화학적 과정을 통해 특정한 유효성분을 추출한 것이 모르핀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잠의 신인 모르페우스에서 이름을 따온 이 모르핀은 효과적인 진통제로 한 때는 만병통치약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물론 그 중독성에 대한 해악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까지라는 유효기간이 있었지만요.^^)


이 모르핀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헤로인이라는 백색가루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헤로인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합성마약들이 개발되어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필로폰입니다. 그리스어 philophonos(노동을 사랑하라)에서 유래한 필로폰은 정식 명칭은 메스암페타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속칭 히로뽕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히로뽕은 1941년 일본의 한 제약회사가 내놓은 피로 해소제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위험한 피로 해소제는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백색가루입니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데, 일본에서 감기약을 만들다 발명된 이 피로 해소제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대량으로 투여되었는데 그 중독성으로 인해 일본에서 히로뽕이 생산 금지되자, 그때 우리나라가 중간 생산기지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본격적인 시기와 유통의 핵심지역이 바로 1970년대, 부산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시장의 새로운 공급처로 떠오르게 된 것은 1968년 정 모씨가 국내 최초로 히로뽕 제조기술을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973년 동아일보             1973년의 기사를 보면 국내에서 최초로 부산 범아제약 대표 유 모씨 등 5명이 정 모씨로부터 히로뽕 제조기술과 원료를 지원받았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출처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그리고 일본 조직폭력단에 의해서 그 제조가 조종되고 있다는 내용도 있는데, 이 말은 히로뽕의 생산이 중단된 일본이 새로운 공급기지로 한국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국내에서는 백색가루를 몰래 만드는 조직들이 활성화되고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감기약을 만들다 발명된 히로뽕이라는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히로뽕의 메스암페타민 성분이 포함된 감기약만 있으면 히로뽕을 제조할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그만큼 어렵지 않다는 의미죠. 실제로 최근에도 감기약으로 히로뽕을 제조하다가 검거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렇게 손쉬운 제조와 확실한 시장이 형성되면서 우리나라 70~80년대는 백색가루의 오명국이라고 할 만큼 그 제조의 양과 폐해가 심각한 상태로 접어듭니다. 심지어 몰래 제조하던 조직과 부패한 수사요원들의 유착이 밝혀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1972년 매일경제        197262일 매일경제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70년 매일경제          백색가루 제조로 체포되는 면면을 봐도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양이 우리나라에서 제조되고, 유통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자금과 원료를 지원받아 생산을 하는 가공무역의 형태였기 때문에 대다수 해외로 다시 되팔려 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량이 국내에 유통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0년 동아일보          1980630일 동아일보 기사 발췌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백색가루의 제조와 유통은 큰 돈벌이였습니다. 1970년대 당시 kg당 히로뽕의 가격이 2억에 거래되었다고 하는데, 1990년대 아파트 가격이 1억이 안 되는 곳이 부지기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때의 2억은 약 200억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준으로 보자면 마트에서 살 수 있는 20kg 1포대의 분량이 약 4000억의 가치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당시 제조자들은 어마어마한 부와 권세를 통해서 왕과 같은 생활을 했으니 마약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겁니다.


마약류 남용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는 강력한 단속 작업을 펼쳤습니다

찰은 1989년 보건복지부로부터 마약감시반 이관을 시작으로 전문적이고 강력한 단속체계를 정비했고, 경찰 역시 전국 지방청 및 경찰서에 마약수사전담반을 편성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관세청은 공항, 항만, 보세구역에서의 마약류 단속을, 국정원은 마약류 관련 정보수집 활동 강화를 추친해 나가며 대한민국을 마약청정국으로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이러한 노력의 바탕 위에서 이룩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3~40년 전, 대한민국에도 백색가루가 성행하고 일확천금을 벌어들이며 마약왕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불법적인 제조와 유통이 안겨다 주는 돈으로 영원히 깨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운 환상에 젖었던 이들은 이제는 없습니다. 짧은 순간의 쾌감이 지난 간 후 심각한 금단증세와 후유증이 온다는 것을 그들 역시 몰랐나 봅니다.


흑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대비하면 더욱 건강한 대한민국이 될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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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포스팅은 쇼박스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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