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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그 사람의 그말] 약자는 늘 정의와 평등을 바라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 1. 7.

그 사람의 그말

"자는 늘 정의와 평등을 바라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약자는 늘 정의와 평등을 바라고 강자는 이 중 어느 것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

중세 말기의 뛰어난 시인이었던 단테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리켜 “지식인들의 스승”이라고 예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학문의 명칭  많은 부분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면 단테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왜 그렇게 높이 평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스승이었던 플라톤과는 달랐습니다. 


플라톤이 이데아라는 이상적인 형상을 중시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선은 추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적인 세상에 있었습니다. 바티칸에 있는 프레스코화 “아테네 학당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두 사람의 시각차가 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산치오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주문으로 27세인 1509~1510년에 바티칸 궁전 내부의 방들 가운데서 교황의 개인 서재인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에 그린 프레스코화. 서명의 방의 네 벽면은 각각 철학, 신학, 법, 예술을 주제로 벽화가 그려졌는데 이중에서 아테네 학당은 철학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가로 823.5cm, 세로 579.5cm 크기의 벽면에 모두 54명의 철학자가 배치되어 있다. 그림 중앙의 플라톤은 그의 역작 ‘티마이오스’를 옆구리에 끼고 손가락으로 이상을 뜻하는 하늘을 가르키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들고 현실주의자를 상징하듯 손바닥으로 땅을 가르키고 있다. 

 

프레스코(Fresco)는 'a fresco' (방금 회(灰)를 칠한 위에) 라는 이탈리아어에서 나온 낱말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많이 그려진 벽화를 일컫는다. 석회·석고 등으로 만든 석회벽의 건조가 채 되지 않은 덜 마른 벽면에 수용성 그림물감으로 채화(彩畵)하는 기법이다. 프레스코란 벽이 깨끗하게 도식(塗飾)되어 있어서 신선하다는 뜻으로, 영어의 프레시(fresh)도 그에 유래한다.

프레스코는 인류 회화사에서 아마 가장 오래된 그림의 기술 혹은 형태로 여겨진다. 기원전 5세기 이래 중국, 한국, 일본에서 그려진 불교벽화의 대부분은 프레스코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위키백과

 

우리의 현실이 중요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을 연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인간은 행복한 삶을 원하고 그것을 충족하는 길은 균형 잡힌 인성을 유지하는 '중용'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행복과 자아실현은 개인이 홀로 성취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다시 '정치학'으로 연결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영역이 광범위한 것은 이런 꼬리물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삶이 흐르는 현실을 사랑했고, 그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선이 플라톤보다 더 냉철하고 비판적인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플라톤의 인식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 속에서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던 그들의 사유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리가 없습니다.


지난번 언급했던 헤라클레이토스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숨어 있는 관련은 보이는 관련보다 더 강력하다.” 2000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에서도 그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게 깊은 영감을 주는 이유는 그들의 말이 지금 제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유사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그들은 그 본질을 바라본 선각자라는 의미입니다. (저만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껏 스스로를 강자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약자였다고 자인하지도 않았습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의하면 저는 약자임이 분명합니다. 지금도 정의와 평등을 바라고 있으니까요. 어느 것도 신경 쓰지 않는 강자의 생각과 심정이 궁금합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라봤던 강자는 누구고, 약자는 누구였을지도 궁금합니다.


다수의 약자가 소수의 강자에게 기를 펴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말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그의 통찰이 놀라우면서도 두렵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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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 가은읍의 철도        석탄 생산지로 유명했던 문경시 가은읍의 옛 철로입니다. 지금은 철도 자전거를 운영하는 곳이지만, 수십년 전에 이곳은 탄광에서 일하는 이들로 북적거렸던 곳입니다. 고려말 학자였던 길재 야은의 시조 중에서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는 대목이 떠올라 찍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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