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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사소한 상식] 논개를 알고 있나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 4. 18.

알아두면 좋은 사소한 역사 상식

우리가 알고 있는 논개는?

 

우리는 바로 알고 있는가.

#논개, 당신은 누구?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식 중에는 틀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나 봅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잘못된 상식 중 하나가 논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임진왜란 당시 진주의 관기로서 왜장을 안고 강물에 투신했다는 논개의 전설은 늘 기생이었던 논개도 그러했는데, 너희들도 춘곤증에 투신하지 말고 눈을 뜨려는 노력을 해보라는 선생님의 당부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논개의 성은 주씨(朱氏)이고, 본관은 신안(新安:중국)입니다. 전라북도 장수(長水) 임내면 주촌마을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데 출생일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장수에 가면 논개의 생가가 있습니다.^^)

논개에 대한 기록은 조선 광해군 때인 1621년 유몽인(柳夢寅)이 저술한《어우야담(於于野談)》에 처음 전하는데 "진주의 관기이며 왜장을 안고 순국했다"는 간단한 기록만 남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논개가 기생이었다고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하죠.

구전에 의하면 논개는 원래 양반가의 딸이었으나 아버지인 주달문이 사망하고 집안에 어려움이 겹쳐 가산을 탕진하자 장수현감이었던 최경회(崔慶會)의 후처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1799년에 호남 유림에서 편찬한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만, 이 내용이 옳지 않다고 의견도 있습니다.)

훈장인 아버지 밑에서 한문을 배우는 논개(출처 : 장수 의암사 논개사당)

후처가 된 배경에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논개를 숙부인 주달무가 그 지방 사람의 백치 아들과 논개를 강제로 혼인시키려고 하자, 이에 논개 모녀가 완강히 반대했습니다.(당연한 일이죠.^^) 이 일이 다시 송사에 휘말려 논개의 어머니였던 박 씨 부인이 억울하게 5년간 관가의 종으로 얽매이게 되었는데, 어머니를 대신하겠다고 간청한 논개를 보고 현감 최경희가 그 효성에 감동해 방면했다고 합니다.

억울한 논개 모녀를 방면하는 장수현감 최경회(출처 : 장수 의암사 논개사당)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최경회가 의병장으로 나서 싸우게 되었는데, 이 때 최경회가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을 지원하여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제1차 진주성 싸움). 

진주성 전투(출처 : 장수 의암사 논개사당)

이후 1593년. 최경회는 경상우병마사로 임명되어 싸웠으나 수많은 인원이 전사 또는 자결하고 28일만에 진주성이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최경회 역시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는데,(제2차 진주성 싸움) 1593년 7월, 일본군 왜장들이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벌인 촉석루(矗石樓) 주연에서 논개는 최경회의 원수를 갚기위해 기생으로 위장해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 있던 그녀는 계획대로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가락지를 끼고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꾀어 벽류(碧流) 속에 있는 바위에 올라 껴안고 남강(南江)에 떨어져 적장과 함께 죽었습니다. 훗날 이 바위를 의암(義岩)이라 불렀으며, 사당(祠堂)을 세워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는 논개. 당시 나이 19세(출처 : 장수 의암사 논개사당)

1846년(헌종 12) 당시의 현감이었던 정주석(鄭胄錫)은 장수군 장수면(長水面) 장수리에 논개가 자라난 고장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논개생향비(論介生鄕碑)를 건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북 장수군에서는 매년 9월 9일에 논개를 추모하기 위해 논개제전(論介祭典)을 열고 있습니다.

논개의 이야기는 기록과 구전으로 떠도는 이야기들이 저마다 제각각이어서 논란이 많습니다. 출생부터 그후 행적과 관련된 일화들이 수많은 정치적 미화가 곁들여진 조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그 죽음에 얽힌 이해관계에 따라 논개가 이용(?)을 당했다고도 합니다. (그 진위를 확인하기에는 제 학식이 부족해서 모두의 과제로 남겨놓겠습니다.^^)

각색과 미화가 점철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올바른 사실들이 밝혀지기 전까지 전 논개가 '기생'이 아니라고 생각하렵니다. 받은 것 없이도 이상하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지금도 여기저기서 휘둘리며 정처없이 떠돌고 있는 논개를 떠올리며 견강부회격이라도 그 편에 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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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목        장미축제로 유명한 곡성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제는 운행하지 않는 철길의 침목 위로 기차가 아닌 사람의 발길이 오갑니다. 갈라진 침목의 사이로 스며든 빗물과 세월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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