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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여행

[통영] 통영, 그 이름의 유래가 된 삼도수군통제영의 세병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 5. 16.

여행가기 좋은 곳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의 세병관"

 

오늘날로 치면 해군본부, 삼도수군통제영을 가다

#체력은 국력?, 군사력도 국력!

통영에는 국보로 지정된 세병관이 있습니다. 세병관에 대해서는 지난 포스팅을 통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기는 했는데, 짧게 다시 언급하자면 조선 삼도수군 통제영의 중심 건물입니다. 1604년에 완공된 이후 약 290년 동안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3도의 수군을 총 지휘했던 곳입니다.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는 이순신 장군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 진영을 통제영으로 삼았고, 이후 6대 통제사가 지금의 통영으로 통제영을 옮겼습니다.)


세병관은 17세기 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합니다. 이곳에서 삼도수군통제영의 의전과 연회가 열리기도 했고,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기둥 사이에 벽을 세우고 초등학교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곳 통영 출신의 많은 예술가들이 이 세병관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해군본부에 해당하는 삼도수군통제영은 조선 선조 36년(1603년)에 창건되어 고종 32년(1895년)에 폐영되었습니다. 통영이라는 지명도 통제사의 본영을 삼도수군통제영 또는 약칭으로 통제영, 통영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민족정기를 말살한다는 목적으로 세병관만 남겨두고 크고 작은 부속 건물들을 헐어 학교, 법원, 검찰청, 세무서 등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현재 볼 수 있는 통제영의 규모와 모습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지는 못했습니다.

삼도수군통제영으로 들어서는 입구입니다.

통제영의 전면에는 망일루가 있습니다. 세병관 앞에 자리한 2층의 누각으로 이 아래를 통과해 세병관을 오르내리게 되어 있어 일명 세병문이라고도 했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훼손되고 없어진 것을 2000년에 복원한 모습입니다.

망일루를 지나면 다시 층계가 있고 그 끝에는 지과문(止戈門)이라는 현판이 있습니다. 그칠 지(止)와 창 과()자를 써 창을 거둔다는 뜻이지만, 이 두 글자를 합치면 굳셀, 싸울 무(武)자 되어 평상시에는 창을 거두지만, 유사시에는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무장을 기상을 나타내는 내용입니다.

이곳 너머에 바로 세병관이 있습니다.

2002년 국보 제305호로 지정된 세병관의 모습입니다. 1605년에 처음 세워진 후 1872년에 다시 고쳐 지은 이곳은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집(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을 이루는 지붕 모양새)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입니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인 두보의 '세병마'의 시구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가져왔는데, 풀이하면 '하늘의 은하수로 피 묻은 병기를 씻는다'는 의미로 전쟁이 그치고 평화를 갈망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세병관에서 지과문과 같이 다른 뜻이 숨어 있는데, 씻을 세(洗)의 삼수변을 제거하면 먼저 선(先)이 되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병기를 씻는다는 '세병(洗兵)이지만, 유사시에는 군사를 준비한다는 '선병(兵)의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 중에도 전투를 유념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곳 세병관의 현판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기도 합니다.

통제영의 정상에 서면 통영시내는 물론 저 멀리 바다가 눈에 들어옵니다. 

세병관의 오른편에는 숙종 27년(1701년) 제77대 통제사인 류성추가 액막이의 용도로 만들었다고 추정되는 석인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두룡포기사비의 모습도 있습니다. 통영의 옛 지명인 두룡포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한 제6대 이경준 통제사의 치적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비문에는 이 비를 세우게 된 경위와 함께 이경준 통제사의 약력과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통제사가 통제영의 군무를 보는 집무실, 운주당입니다. 

그리고 운주당의 뜰에 심어져 있는 고목입니다.

인적인 평가

이순신 장군이 오랜 준비를 통한 해전의 승리로 누란에 빠진 조선의 구했듯이 전쟁을 대비하는 평상시의 군사력은 평화를 지속하는 강한 힘입니다. 우리나라 주변 각국의 군사력 증강이 예사롭지 않은 시점입니다. 힘이 있어야 내 것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역사 속에서 수없이 증명되어 온 사실입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가족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 겸 오늘의 우리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는 세병관 방문은 어떠신가요? 

각 포털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flipboard에서 '행복사냥이'를 검색하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기와, 그리고 질서        담벼락과 지붕 기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한 나열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우리의 한옥을 다시 생각하는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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