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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여행

[경기도 양주] 조선시대 국립 중ㆍ고등학교 "향교"

by 행복사냥이 2019. 1. 2.

나를 위한 힐링여행, 다시 보는 문화유산

양주 향교

 

 

 

 

양주시 문화유산

조선시대 국립 중ㆍ고등학교 "향교" 

 

 

 

#지방 교육기관 향교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교육기관으로 지금의 중ㆍ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이 이뤄졌고,(예전부터 학구열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향교는 양민 이상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을 알아보기 위해 전국에 있는 향교의 수를 세어봤더니 232개의 향교가 남아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교육 열정입니다.^^  (출처 : 위키백과) 

 계

제주

서울 

인천 

경기도 

 강원도

대전 

세종 

충북 

232

3

 2

 4

 28

 17

 2

 2

 18

충남 

광주 

전북 

전남 

부산 

대구 

울산 

경북 

경남 

 34

 1

 23

 28

 2

 3

 2

 38

 25

 

 

양주향교(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호) 

양주향교는 조선 태종 원년(1401년)에 건립된 후 많은 유학자를 양성 배출하던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다. 서기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었고, 1610년에 재건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었다. 전 후 유림들이 뜻을 모아 대성전을 먼저 복원하고 1984년에 명륜당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주향교에서는 고대 중국 오성과 송대 2현을 비롯 신라, 고려, 조선조의 18 선현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유덕을 추모하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

 

 

# 향교와 서당의 차이점은?

가장 큰 차이점은 향교는 국립이고 서당은 사립 교육기관입니다.

 

#서당

서당(書堂, 영어: Seodang)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서 계속된 비형식적 사설 교육 기관이다. 설립에 있어서 인가(認可)를 위한 기본 재산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뜻있는 자는 자유로이 설립·폐지할 수 있었다.

서당은 사학(四學)과 향교에 입학을 위한 준비 및 널리 서민 대중의 자제들을 위한 교육 기관이 되어 한때 극히 성행하여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퍼졌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점차 그 내용이나 질이 저하됨에 따라 궁유(窮儒)·한사(寒士)의 걸식처로 변하여 자연히 쇠퇴하게 되었다. 서당에서 수학한 학도는 7세부터 16세의 아동들이 중심이었으며, 20세 내지 25세 이상의 성인이 있는 경우도 많았다. 서당의 교육은 한 글방에서 복수식 교육을 실시하였으므로 그 교육 수준을 초등·중등 교육 중의 어느 편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다. 입학은 대개 동지에 했다고 한다.

출처 : 나무위키

 

 

결국, 향교에 들어가기 전에 다녔던 요즘 말로 하면 사설학원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리해보면 "서당 - 향교 - 과거 응시 - 관직(공무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모습과 비슷합니다.ㅎ(왠지 씁쓸하네요.)

그렇다면 어떤 교육을 했을 까요?

 

향교에서는 시나 문장을 짓는 사장학과 유교의 경전 및 역사를 주로 배웠다고 합니다.(어렵죠?) 그뿐만 아니라 공자 등 성현에게 제사를 지낸 장소로도 역할을 했습니다.

서당은 향교를 들어가기 위한 기초지식과 향교에서 배울 선행학습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450살이 넘은 느티나무와 외삼문          양주 향교는 2번 전소되었습니다. 양주향교 앞을 450년 넘게 지켜온 느티나무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명월당        공부하는 강당 "명월당",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1610년 광해군에 복원되었다가 6ㆍ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어 최종적으로 1984년에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대성전            특징이 옆에서 지붕을 보면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이고 공자와 중국 4대 성현의 위패, 우리나라 18 성현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출입이 되지 않아 사진으로만 담아왔습니다.

 

조선시대 향교는 국가가 설립한 지방 교육기관입니다.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지금은 대부분 제사의 기능만 있다고 합니다. 반면, 서당은 개인이 운영하던 사설 교육기관으로 향교에 가기 전 선행학습을 위한 교육기관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교육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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