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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여행

[천안] 다시 외치는 독립만세! 독립기념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 3. 31.

요즘 핫한 곳, 독립기념관

과거를 통해 나아가는 미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독립기념관을 가다

 

#3.1운동,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올해는 1919년 3월 1일 경성에서 선포된 3. 1독립선언에 기초해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벌어진 지 100주년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독립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의미있는 주말을 보내고 싶어서 가족들과 함께 천안으로 떠났습니다.

독립기념관 입구

교통 체증이 심했습니다. 일찌감치 네비를 통해 고속도로가 막힌다는 것을 알고 국도를 택해 떠났지만, 목적지를 불과 2km를 앞에 두고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근에 있는 중화요리집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독립기념관에 들어섰습니다.

정문을 지나 보이는 겨레의 탑

정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겨레의 탑이 보입니다. 민족의 비상을 표현하고 있는 겨레의 탑은 하늘로 날아 오르는 새의 날개 같기도 하고, 기도하는 양손 같기도 합니다. 전 · 후면에 무궁화와 태극의 약동하는 부조가 있고, 탑 내부에는 청룡 · 백호 · 주작 · 현무의 4신도를 상징화한 모자이크 조각이 4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바닥에는 화강석으로 국토가 그려져 있고, 높이가 51m인 대형 조형물입니다.

겨레의 집 앞에 조성된 겨레의 큰마당, 그리고 그 안의 태극기한마당. 수많은 태극기가 장관인 곳으로 사진찍기에 딱 좋아!

겨레의 집에 다다르기 전, 수많은 태극기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관람객들을 맞이합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사람들이 더 많을 텐데, 이날은 미세먼지가 심해서 평소보다는 관람객이 적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찍고 계시더라고요. 저도 여기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겨레의 집

립기념관의 상징이자 중심이며, 기념 홀의 역할을 하는 건물입니다. 축구장만 한 크기로 높이는 15층 높이(45m)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기와집입니다. 고려시대 건축물인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 설계한 한식 맞배지붕 건물이며, 중국 북경의 천안문보다 더 크다고 합니다. 제 어린 시절의 기억 중 독립기념관에 관한 것은 이 건물이 유일합니다. 그만큼 인상 깊은 곳입니다.

오후 반나절이면 모두 관람할 수 있겠다는 구상과 계획을 가지고 독립기념관에 도착했는데, 예상외로 시간이 늦어져서 모두 둘러본다는 당초의 계획이 욕심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곳부터 빠르게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할 때 타고 온 C-47 수송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인사들은 광복 후 1945년 11월 23일 C-47 미군 수송기편으로 중국 상하이를 출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주요 인사들의 환국을 도와주던 기종입니다.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의 조각상

"사나이 뜻을 세워 집을 나가면 공을 이루지 않고서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하셨던 윤봉길 의사와 "국가의 안위를 마음으로 애쓰고 속을 태운다"는 안중근 의사의 조각상입니다. 안중근 의사 옆에는 김좌진 장군이 계신데, 다 담아 오지는 못했습니다. ㅜㅜ

독립기념관에는 야외전시로 조성된 곳 말고도 9개의 전시관이 있습니다. 이 9개관을 다 돌아보려면 짧게 잡아도 3시간 이상은 필요해 보였습니다. 전 2개관을 돌아보는 데도 1시간 30분이 걸리더라고요.

기념관 내부의 모습

각 기념관은 시대적 구분을 통해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워낙 많은 분들이 관람을 하고 계셔서 양질의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사진촬영에 신경을 쓰기에는 볼거리가 너무 많았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요 인사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분들이 모두 모여 계십니다. 이분들 모두가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직접 목도하지는 못하셨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꿈을 갖고 헌신하셨던 분들입니다.

제가 인상 깊게 봤던 영상 중에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단위는 '개인이 아닌 '온 집안'이었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면 아이들도, 어머니도 독립투사가 되었다. 처음부터 독립운동을 하자고 굳은 다짐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름 모를 산야에서 쓰러져간 수없이 많은 이들의 독립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단했던 역사의 한가운데 그들이 있었고, 그들로부터 오늘이 있었다."

여기에 자리하고 계신 분들 말고도 이름 없이 그 길을 가셨던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었을 겁니다.

6. 25전쟁 그 당시의 선전물(벽보)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을 재현한 모습

6. 25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벽보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졌던 당시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당시의 모습을 두고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싹 트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 될 것'이라는 외신의 평가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있게 된 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니 기억하지 않은 많은 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 떠오르는 날입니다. 

쉽게 생각하고 떠난 독립기념관 방문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은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남겨놓은 것처럼 묵직한 무엇인가가 가슴을 눌렀습니다. 더 많은 여유 시간이 있었으면 더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었을텐데, 너무 준비없이 맞이한 독립기념관이어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재방문을 다짐하면서 그때는 차분하고 여유있게 돌아보리라는 각오를 마음에 새깁니다. 아직 독립기념관을 가보지 않은 분들이 계시다면 올해,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따스함이 몰려오는 봄날에 독립기념관 관람을 여러분께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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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광장의 태극기        태극기는 단조로운 듯 하면서도 감각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로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태극기지만, 모아 놓으면 더 큰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해질 녁 태극기광장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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